2011년 6월 15일
드뎌 봤다 억척가!
드뎌 봤다 이자람 소리 마당!!
보는 내내 같이 울고 감탄하고..가슴 먹먹해하고..
마지막을 기립박수 치게 만드는..그런 공연이었다..
끝나고 나오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녀는 무대를 이세상 마지막 무대처럼 하는구나.,.라고..
어찌나 전율이 느껴지던지..찌릿찌릿..
(물론 요즘 디스크 증상으로 몸이 찌릿거리긴 하지만..그런 물리적인 증상말고..;;)
나도 이번 시험을 이세상 마지막처럼 임해야겠다고 진지하게..그리고 유치하게 일차원적으로 생각해본다..;;
이런 전율을 느껴본지도 참 오랜 만이구나..
김용걸,이상은,이명국..그리고 이자람..
앞으로 많은 전율을 느끼며 내인생도 전율로 채워보고 싶다는 생각...
해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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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소리꾼 이자람 1인15役 `억척가`로 돌아왔다
"전쟁통에 살아가는 억척이 삶이 참으로 기구하다 싶다가도 아 요새 사람들 생각허면 억척스럽지 않고는 살아갈 엄두가 안나는,여기가 바로 전쟁터가 아니더냐."
'예솔이'로 유명한 소리꾼 이자람(33 · 사진)이 '억척가'로 돌아왔다. 2007년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21세기 한국 사천에 사는 뚱뚱한 처녀 순덕의 이야기로 탈바꿈해 호평을 받은 지 5년 만이다.
이자람의 '억척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적벽가'의 중국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브레히트의 원작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이 유럽의 30년 종교전쟁을 배경으로 한 것과 대비된다. 이자람은 대본,작창,연기를 맡는 동시에 억척어멈,두 아들,딸,취사병,뺑어멈,천의도사,병사,해설자 등 1인 15역의 캐릭터를 혼자 소화한다.
연출가 남인우 씨는 "이자람은 때로 '이!잘난'이라고 불릴 정도로 판소리 어법을 본능적으로 구사할 줄 아는 소리꾼이면서 동시대 사람들에 어떤 말을 건네고 싶은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작가"라고 평가했다.
'억척가'의 내용은 이렇다. 전남 시골 마을의 김순종이란 여인이 사소한 오해로 소박을 맞은 후 중국 한나라에 도착한다. 아비가 다른 세 명의 자식을 둔 김순종은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전쟁 상인이 된다. 착하고 순박했던 이 여인은 전쟁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거짓 상술로 가득찬 장사꾼이자 자식의 죽음 앞에서도 모른척하는 비정한 어미로 변해간다.
이자람은 작가로서 언어유희와 세태 풍자에 민감한 필치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21세기에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 이름이 불쑥 등장하기도 하고,급할 땐 영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억척어멈의 달구지에는 화살촉,장화,투구,손전등,술병,논어책,이어폰,아이폰까지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구나"하는가 하면 "지긋지긋한 내 팔자야 이놈의 이름을 바꿔보자….글로벌 시대에 맞춰 영어 이름이 좋겠구나….수잔 제인 캘리 소피 아니야,안되겠다,내 더 이상 아이는 안 낳을테니 안 낳아 안 나 안 나 안나 내 이름은 오늘부터 김안나로다"라며 판소리만이 표현할 수 있는 위트를 발휘한다.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이자람의 '억척어멈'의 가장 큰 차이는 비극을 다루는 태도다. 세 명의 자식을 잃은 브레히트의 억척어멈이 비극 그 자체로 끝을 맺는다면 이자람의 억척어멈은 전쟁 통에서 죽음을 빌어먹고 사는 삶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서사,비극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을 준다. 음악도 파격적이다. 인디밴드 한음파의 베이시스트 장혁조와 타악연주자 김홍식,이향하가 '사천가' 이후 다시 뭉쳤다. 북,장구,꽹과리는 물론 젬베,준준 등 아프리카 타악기가 더해지고 기타와 베이스까지 합류한다. 이자람은 지난해 폴란드 콘탁국제연극제에서 '최고 여배우상'을 받았다. 14~19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전석 4만원.(02)2005-0114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결코 대충하지 않았다는 뿌듯함, <억척가> 이자람
빠른 질주는 바람의 흔적을 남기고, 또박또박 디뎌 걷는 걸음은 묵직한 발자국을 새긴다. 세상의 상대적인 눈빛에 혼란스러울 스스로를 다잡고 쉽게 질주하지 않겠다는 다짐. 소리꾼 이자람은 이것이 맞는 것 아니겠냐고, 나지막이 이야기 한다. <억척가>는 그녀 스스로의 믿음이 낳은 또 하나의 보물이 될 것 같다.
해 볼만 하다는 느낌, 이것뿐이었다.
<사천가>에 이어 다시 브레히트 원작의 작품이다.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이하 ‘억척어멈…’)을 읽고 “괜찮다!”라고 했을 때 연출이 엄청 반대를 했다. 의도치 않았지만 또 브레히트 작품이고, 사람들이 또 왜 브레히트와 판소리냐고 물어볼 테니까.(웃음) 그런 후 2년 동안 고대 희극부터, 셰익스피어 작품 등 스터디를 했는데 결국 브레히트로 돌아왔다. 브레히트를 선택한 게 아니라 그가 쓴 이야기가 필요했다. 그 이야기만큼 내가 우리의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낼 수 있는 좋은 뼈대가 없었고 해 볼만하다는 느낌이 오는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억척가> 준비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2008년 <사천가> 업그레이드가 끝났을 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들었다 놓은 게 2009년이고, 그 때부터 스터디를 엄청나게 했다. 희곡 공부를 하다가 결국 억척가를 다시 잡은 게 2010년 11월이다. 일단 부담이 너무 컸고, 머리로는 부담을 떨쳐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본능이나 마음이 머리를 따라가는 데엔 밟아야 될 시간이 꼭 있지 않느냐. 그 시간을 겪고 난 후 11월 쯤에는 해야겠다고 밀어 붙인 것이다.
‘억척어멈…’ 과 같은 메시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가, 아니면 정해진 것 없이 마음에 닿는 이야기를 찾았던 것인가.
사실 하고 싶은 소재는 다른 것이었다. 그 소재에서 이야기를 발전시키려다 보니 계속 뜬구름을 잡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의 이야기를 하려는 건데 중심을 이야기 하는 곁가지가 중심보다 더 중요해져 있었다. 그걸 다시 부수면서 깨달은 건, 내가 당시 명확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건 아니다, 였다.

그렇다면 내가 뭘 하고 싶은가, 내가 보고 싶은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보고 싶은 공연이란 시원한 거, 나 대신 누구 욕도 해주고 울어줬으면 좋겠고, 봤을 때 가슴이 막 어쩔 줄을 모르겠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주변을 돌아보니 사건 사고가 너무나 많고, 그 일들 속에서 다들 자잘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았다. 그걸 관통하는 것이 곧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일 터이고. 인터넷에 ‘억척’을 검색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이렇게 억척스럽게 산다는 것에 대해 푸념을 하고 있었다. 다시 ‘억척어멈…’의 희곡을 든 이유는 결국 ‘억척’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이었다.
<억척가>에서 ‘억척’이 특정한 의미를 지니는가?
‘억척’에 대한 태도를 긍정하거나 부정하거나 어떤 가치판단을 내리려는 건 절대 아니다. 그저 그렇게 살고 있는 우리 모습들, 모순들,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누구나 어떤 부분에서 ‘내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됐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느냐. 그것에 대한 통쾌함, 위로를 하고 싶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사실 처음엔 그저 끌려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연출도 제목이 마음에 드니 해보자! 한 것이고.(웃음)
희곡의 배경은 유럽 전쟁이나 <억척가>는 중국을 무대로 했다.
당연히 처음엔 한국 전쟁을 찾아봤다. 조사를 하다 보니, 6.25는 아직 우리에게 너무나 가까운 과거인 걸 깨달았다. 그 때를 겪은 살아계시는 분들에겐 너무 아팠고, 나라를 잃을 뻔 했고, 안전한 삶에 대한 갈망이 컸던 현재의 일이었다. 전쟁에서 벌어진 이권 다툼들, 일본, 중국, 미국 사이의 우리나라가 여전히 불쌍했다. 아직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 잔재가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하면 마치 원자핵 중앙을 잘못 건드려 방사능만 맞게 되는, 그런 선택이 될 것 같았다.
결국 전쟁을 겪어 보지 않은 나에게 모든 전쟁은 허구인데, 가장 자신있게 엮을 수 있는 허구가 적벽가 속의 삼국 전쟁이었다. 적벽가를 5년간 배우고 연습하고 완창하면서 인물들을 뛰어 놀게 했던 전쟁터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중국을 배경으로 하게 되었다.

<사천가>가 뚜렷한 인간 군상에 대한 충돌이었다면, <억척가>는 상황 속에 놓인 인물의 이야기 같다.
억척어멈에게 느낀 건, 살아남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교육시켰을 때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행동패턴이다. 달구지를 지켜야 하고 삶의 터전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 아들의 목숨보다 달구지, 이런 선택을 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선택 가치가 잘못되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이다.
요즘은 보험금 때문에 가족을 죽인다든가, 먹고 사는데 취하는 선택들, 중요 가치들의 우선순위가 엉키지 않았는가. <억척가>는 가치의 우선순위가 엉켰을 때 초래하는 가장 큰 비극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억척 어멈은 뒤엉킨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사람다운 가치로 매겨보자, 그렇게 살아보자, 하면서 극이 끝난다. 그렇기 때문에 <억척가>는 ‘억척어멈…’과는 다르다.
대충하지 않았다는 뿌듯함, 이런 삶이 좋다.
직접 이야기도 쓰고 작창도 하고 배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모든 작업이 유기적으로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 같다.
대본 쓸 때는 정말 드라마에 집중해서 딱 대본만 쓰고, 작창가로 대본을 앞에 둘 때는 또 다른 시간이다. 동시에 진행되지 않는다. 작창이 다 나온 후엔 배우 모드로 돌입한다. 그 때 그 때 집중해야 하는 게 다르다.
그래서 한 6개월 정도는 <억척가>만 하는 셈이다. 작품 하나 나오는 게 너무나 힘들지만, 이런 삶이 좋은 것 같다. 작품을 낳아 놨을 때 어떤 뿌듯함이나 대견함, 떳떳함이 있다. 대충하지 않았다, 계속 열심히 하고 있고, 앞으로 이렇게 키울 것이다, 하는 것들이 다 갖춰졌을 때 부끄럽지 않다는 그런 마음들.
이제는 우리의 가치를 우리가 알아주자, 하는 다짐도 있다. 판소리가 너무 척박한 장르로 인식되어 있어 <사천가>가 자리를 잡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계속 그 싸움이었다. 내가 평생을 갈고 닦은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무엇과 견주어도 자신 있고 부끄럽지 않다는 것. LG아트센터의 초대권 없는 정책이 너무나 좋다. 물론 가족들이나 보여드리고 싶은 분의 티켓을 내가 직접 사야 하지만(웃음) 내 공연이라도 직접 공연 티켓 사는 게 나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열심히 만들었고, 그렇게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사천가>는 해외공연도 많이 했다.
올해도 아비뇽에 가고 폴란드의 한 페스티벌과 협의 중이다. 최근 리용 공연은 셋업 기간이 거의 일주일로 너무 충분했고, 극장에서 연습하고 무대에 올라가니 정말 작품의 힘이 달랐다. 관객도 최고였고, 극장도 최고였고.
해외공연이 다 좋다고는 할 수 없다. 때론 소모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해외든 한국이든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공연, 충분한 가치를 만들어 내는 곳에서 공연하는 게 건강한 순환인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어디에 서야 될지, 서지 말아야 할지 스스로에게 굉장히 엄격하다.
스스로 무대에 서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관객이나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이 공연을 해치우면 되는 거, 공연을 올리기만 하면 되는 거, 그런 무대는 가지 않는다. 그런 경우는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하면 되니까. 공연을 잘 올리고 싶은 극장, 잘 해보고 싶은 관계자들, 이 공연이 보고 싶은 관객들이 일 순위가 된다. 그래서 나의 콘텐츠에 집중하는 것이다. 나의 퀄리티를 지키고 있다면, 이 고집이 타당하다면, 아주 조금씩 변화가 생길 수 있을 테니까.
<서편제>는 나에게 굉장히 달콤한 콘텐츠였다
지난 해 뮤지컬 <서편제>를 했다.(그녀는 작곡과 주인공 송화 역을 동시에 맡았으며, 제5회 더뮤지컬어워즈에서 여우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좋은 경험이었다. 이지나라는, 나의 가치를 알아주고 존중해주고 끝까지 믿어준 그런 예술가를 만난 것도 큰 기쁨이고, 그리고 더 많은 대중을 한 번에 만날 수 있었고. <서편제>는 나에게 굉장히 달콤한 콘텐츠였다. 그런데 달콤하면 독이 된다. 난 나의 갈길 가야 한다.
그런데 가장 달콤한 게 뭔지 아는가? 무대에 살아 있는 배우와 함께 있다는 것이다. 진짜 행복했었다. 특히 서범석 같은 배우는 무대에서 주고 받는 것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무대에서 받아주고 받은 만큼 또 준다. 난 그걸 또 받아먹고. 그 맛있음을 아니까 인간적으로도 서로 아끼게 되고. 이런 관계를 맺는 게 너무너무 좋았다. 난 진짜 범석 아저씨 너무 좋다.(웃음)

제작하면서 고생이 많았다고 하던데.
정말 고생 많이 했다. 나는 판소리를 좋아하고 그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지만, 그걸 몰라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고. 또 정말 잘나간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뮤지컬을 만드는데 망할까 봐 다들 발을 동동 구르고.(웃음) 그 분들은 나보다 뮤지컬에서 타협할 게 더 많을 거 아니겠는가, 그 타협의 과정에서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 정말 많았다. 고생이란 결국 두려움과 싸우는 것이다. 너무 큰 두려움과 싸운 것 같다.
앞으로 다른 뮤지컬 참여 계획은 있는가?
내가 꼭 필요한 자리라면, 나의 필요조건이 맞으면 갈 테지만, 잘 모르겠다. 나는 이미 내 삶에서 내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억척가>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할 테고. 중간에 뮤지컬로든 영화로든 여행은 다닐 수 있겠지만. 그런데 내 본능과 마음과 이성이 다 허락할 때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달콤함과 스스로 생각하는 가치가 부딪칠 때, 많이 싸우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억척가>로서 그 달콤함까지 채우고 싶은 것이다. 그게 올바른 선택이라 생각한다.
별명이 무엇인가?
연출님이 ‘이잘난’이라고.(웃음) “에라이 이 잘난아, 너 잘났다”(웃음) 내가 굉장히 솔직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채찍질만은 엄격하다. 자칫하면 너무 난삽해지기 때문이다. 정신을 안 차리면 내가 누구인지도 모를 테고, 지금 내가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게 삶에 언제나 필요한 것 같다.
이자람밴드 공연 계획도 궁금하다.
<서편제> 할 때 만난 이영미 언니 때문에(웃음) 7월 3일에 구로아트락페스티발에서 한 꼭지 하게 되었다. 언니랑 범석 오빠랑 제일 친하다. 같이 밥도 먹으러 가고 그런다.

멋지다는 말, 많이 들을 것 같다.
그렇다. 이렇게 말하니 나 되게 재수 없네.(웃음) 멋지려고 노력한다.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말 멋지기 때문에,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예를 들면?) 지금 생각나는 사람 말하면 되게 웃을 텐데, ‘최고의 사랑’ 독고진?(웃음)
사실 <사천가>를 하고 얼마나 내가 유명해졌고 더 컸는지, 그런 건 잘 모른다. LG아트센터에서 <억척가>를 한다고 하니 사람들이 내게 승승장구 한다는 말도 하시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 삶은 변한 게 없는 데 사람들이 날 그렇게 느끼는구나, 싶어 참 신기하다.
보통 <사천가>나 <억척가>를 통해 달리는 나의 삶의 속도가 40km라면, <서편제>는 120km를 밟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달리는 속도는 40km가 맞는 것 같다. 괜한 스피드에 내 욕심과 욕망을 내는 게 올바른지, 별로 멋지지 않은 욕망인지, 이 욕망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되는지를 잘 보려 한다. 굉장히 피곤할 것 같지 않은가?(웃음)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게 맞는 것 같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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