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lettante

엘리스가 사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포긴 2012. 7. 27. 10:16


어렸을때 꿈중에 하나가 우리집이 도서관이였으면 하는 것이었다.
책도 좋았지만..

종이냄새 나는 그리고 상상을 자극하는 나만의 공간같은 그런 느낌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외국영화에서 가끔 아이들에게 책읽어주는 주인공들이 보이면..

우리도서관도 저렇게 해야지..그런 꿈.^^;

 

그런데..이미 도서관들이 많이 바뀌었다..
지역주민과 소통하고 문화행사도 많고..
물론 아직은 모두가 편히 이용하는.. 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겠지.

 

아뭏든 사설이 또 길어지는데..
내가 상상하던 책이 있는 공간이 있더라는..
그리고 의외로 생각보다는 많더라는..

그중 하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소리패 '바닥소리'때문에 눈에 띄어 들어간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http://www.2sangbook.com)

정말 꿈꾸던 걸 현실로 옮겨놓은, 아니 더 멋진 곳.
더더구나 소통하는 그 역할도 너무 근사한 곳.

 

셤끝나면 은평구로 산책 다녀와야겠다.
이상북에서 소개한 몇몇 책방들도 같이..

 

아래 글은 이상북 쥔장이신 윤성근님이 책방관련한 좌담회에서 발표한 글이다.
내가 이 글읽고 얼마나 감동했는지 아실려나..^^
지금은 내가 집을 도서관으로 만들겠다는 무모한 꿈을 꾸진 않지만..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걸어갈지..

..에 대한 고민에 대한 물꼬를 틔워주는 것 같아서...
윤성근님께 허락을 얻어서 여기에 옮겨 놓는다.

 

나도 더더 많은 생각을 하고 싶고...
혹시 이글을 읽는 몇 안되는 분들도 한번 더 생각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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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은평구 응암동에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윤성근입니다. 원래 제가 연락 받기로는 한 오 분 정도 얘기를 해달라고 들었는데 분위기를 보니까 그렇게 짧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은데요? 하지만 어떻게 합니까? 제가 준비한 말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애초에 오 분 정도 얘기할 것을 여기 스마트폰에 적어왔으니까요. 일단은 제가 준비해갖고 온 얘기를 하고 거기에 살을 좀 붙여서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들고 있는 이것, 뭔지 아시죠? 스마트폰입니다. 전화기이지만 여기에 별별 기능이 다 들어가 있어서 거의 컴퓨터 한 대를 들고 다니는 느낌입니다. 저는 특히 일정관리 때문에 이 스마트폰을 샀는데요, 이게 이래 뵈도 인터넷 구글(Google.com) 웹사이트하고 완벽하게 연동이 됩니다. 데스크탑 컴퓨터 앞에 앉아서 구글에 접속한 다음 일정을 새로 쓰거나 수정하면 이 스마트폰에 곧바로 적용이 됩니다. 반대로 스마트폰에서 그런 일을 해도 실제 구글 웹사이트에 반영이 되지요. 얼마나 편합니까? 저는 이것 때문에 종이 다이어리를 안 갖고 다닙니다.

아마 저 말고도 이런저런 이유로 요즘 스마트폰 쓰는 분들 많을 겁니다. 그런데 이게 참 이율배반적이에요. 스마트폰 꽤 비싸지요? 대게는 제 돈 다 안내고 무슨 할인을 받아서 싸게 사지만 그런 거 없이 현금주고 사려면 백 만 원 돈입니다. 냉장고 한 대 값이에요. 길 다니다보면 ‘아이폰’, ‘모토로이’, ‘갤럭시’ 따위 스마트폰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아주 많이 봅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닌가봅니다. 그런데 백 만 원 짜리 스마트폰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프로그램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대중교통도착안내 서비스라고 합니다. 손에는 백 만 원 짜리 스마트폰 들고, 가방 안에는 넷북 넣어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이율배반적으로 내가 타려는 버스가 언제 오는지 궁금해서 스마트폰으로 버스 번호를 검색하고 있는 겁니다. 생각해보면 참 씁쓸합니다.

며칠 전 인터넷 뉴스를 보니까 사대강사업 하는데 수질을 조사한다고 로봇 물고기를 만들었대요. 그 물고기가 헤엄쳐 다니면서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크기가 1미터나 된다고 해요. 이걸 대통령에게 보고했더니 대통령은 1미터나 되는 로봇물고기를 보면 진짜 물고기들이 다 놀란다면서 크기를 줄이라고 지시했대요. 그래서 그걸 개발한 참모가 물고기 안에 들어가는 장치들이 많아서 크기 줄이기는 어렵다고 하니까 대통령이 아이디어를 줬어요. 크기를 줄이는 대신 기능을 분산시켜서 너덧 마리가 몰려다니게 하면 되지 않느냐는 거 에요. 정말 신선한 아이디어죠? 그래서 로봇 물고기 크기를 절반 정도로 줄여서 다시 개발한대요. 저는 한참 전에 로봇물고기를 개발한다고 얼핏 들었을 때 이게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 그냥 루머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게 지금 실제로 만들고 있는 거잖아요? 정부 말대로라면 사대강 사업은 환경을 살리는 일인데 멀쩡한 강에 보를 쌓아서 막고 흙을 퍼 나르고 그래요. 거기에 로봇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을 생각해봐요. 이것도 참 이율배반적인 거 아닙니까?

책방에 와서 왜 스마트폰하고 사대강 이야기 하냐고요? 이제부터 책방 얘길 하려고 운을 좀 띄운 겁니다. 책방도 지금 말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요즘 동네 작은 책방이 다 죽어간다고 합니다. 갈수록 세상이 복잡하고 알아야 할 것도 넘치는데 사람들이 오히려 책을 안 읽어요. 대학생들도 오히려 예전에 좋은 책 더 많이 읽었지 지금은 책을 잘 안 읽어요. 그래서 책방 살림 꾸려나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럼 그 많은 지식은 어디서 얻습니까?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서 얻는 거 에요. 요즘 대학생들도 리포트 쓸 때 ‘지식인’에다가 물어본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우스운 일이죠. 게다가 그렇게 얻은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하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그냥 ‘Ctrl+C’ 하고 ‘Ctrl+V’ 해서 붙여넣기 하는 거죠.

물론 그것 뿐만이 아니죠. 여러분 개그프로그램에서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외치는 사람보고 많이 웃죠? 그런데 사실은 지금 여기 앉아있는 우리부터가 일등만 기억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들 그래요. 보세요, 책을 살 때 대게 어디서 사요? 한 푼이라도 더 싸게 주는데서 사죠?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요. 요즘은 도서 정가제가 있어서 출간 되고 1년이 지나지 않은 책들은 싸게 팔수가 없으니까 덤으로 마일리지라도 더 많이 주는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살 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저부터가 그런걸요? 오프라인 서점은 어디로 가세요? 교보나 영풍 이런 곳으로 가지 않나요? 엄청나게 책이 많은 곳으로 가야 그나마 허탕을 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책을 살 수 있으니까요. 동네 서점은 규모가 작으니까 거기서는 내가 원하는 책을 즉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큰 서점으로 갈 수 밖에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작은 책방이 어떻게 살아야할지 걱정하고 있으니 이것 역시 이율배반적인 게 아니고 뭡니까?

이제 꽤 오래 된 이야깁니다만, 종로서적이 문을 닫았을 때 정말 눈물이 날 정도였습니다. 저는 그 책방을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렇게 큰 책방이 갑자기 문을 닫는다는 게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주 가던 책방이 강남역 지하에 있던 동화서적이었습니다. 그것도 망했죠. 강남역 제일생명 네거리에 교보문고가 들어오고 난 뒤 강남역 근방에 있던 서점, 음반가게 따위가 많이 문을 닫았습니다. 씨티극장 지하에 있던 씨티문고가 리브로에게 넘어갔는데 최근에 리브로마저 문을 닫았습니다. 씨티극장 건너에는 뭐가 있었는지 기억나요? 그래요, 타워레코드라고 엄청나게 큰 음반 판매장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문을 닫고 지금은 옷을 파는 건물이 됐습니다. 이게 누구 책임이라고 생각합니까? 물론 회사 운영을 잘 하지 못한 경영자 책임이 크겠지요. 하지만 사람들이 책 살 때 교보만 가고 다른 데 안가니까 매출이 오르지 않아서 문을 닫는 겁니다. 어찌보면 저와 여러분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강남역에서 서점과 음반가게를 줄줄이 문 닫게 한 장본인입니다.

큰 책방도 이런데 동네에 있는 작은 책방이라면 오죽하겠어요? 정말 못 견딥니다. 지금 동네 책방 가보세요. 거의 다 학생들 참고서, 학습지 아니면 여성잡지 파는 곳으로 전락했습니다. 이건 사람들이 책을 안 읽고 하는 문제도 있지만 그 전에 좀 넓게 보면 동네문화가 실종 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동네사람들이 편하게 즐기는 문화공간이 다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누가 물어볼 때 저는 동네책방이 살려면 우선 ‘연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힘없고 작은 것일수록 연대하면 더 큰 힘이 나옵니다.

김지하 시인은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이라는 책에서 이상한 말을 하나 합니다. ‘흰 그늘’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그늘이 뭡니까? 햇빛이 닿지 않아서 검게 변한 부분을 그늘이라고 하잖아요? 그늘이란 검은색입니다. 그런데 흰색 그늘이라니요? 시인이기 때문에 말장난 한 것 같지만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숲에 나있는 오솔길 걸어보신 적 있나요? 수목원 오솔길도 그렇고요. 숲길을 걸으면 굉장히 시원하죠? 나무 그늘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 그늘을 생각해보세요. 나무 가지에 난 나뭇잎들은 하나하나 떼어보면 크기가 작고 보잘 것 없지만 그게 촘촘히 나있으면 햇빛을 많이 가려서 그늘이 됩니다. 하지만 커다란 벽처럼 햇빛을 다 가리지는 않죠. 어쨌든 나뭇잎은 듬성듬성 나있기 때문에 햇빛을 가리는 부분이 있고 그대로 통과시키는 부분이 있습니다. 오솔길 바닥에 나있는 그림자를 보면 알아요. 검은 부분이랑 흰 부분이 마치 눈을 뿌린 것처럼 흩어져있습니다. 이 그늘은 어떤 색인가요? 누구라도 이 나무그늘을 검은색이라고 말 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게 바로 ‘흰 그늘’입니다.

숲길을 걸을 때 시원함을 느끼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그늘을 만드는 나무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상상을 해보세요. 숲길을 걸을 때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를요. 나뭇잎 사이를 휙휙 소리 내며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요. 상상만 하는데도 상쾌하고 시원한 뭔가가 느껴집니다. 우리가 숲길을 걸을 때 느끼는 상쾌함은 어느 한 가지 작용으로 그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 크기도 제각각인 나무와 나뭇잎이 만드는 그늘, 새소리, 바람소리, 졸졸 흐르는 계목 물소리 - 이 모든 게 다 아름답게 어울려있기 때문에 시원한 것입니다. 연대한다는 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 모여서 더 큰 힘을 내는 것입니다.

제가 있는 은평구 같은 경우 지역시민단체들이 많습니다. 옆 동네 마포 같은 경우는 ‘성미산마을’이라는 마을 공동체가 있을 정도에요. 이번 유월 선거에서 성미산마을은 구의원 후보를 내기도 했습니다. 은평구는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직까지 연대하는 힘이 강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영세한 단체들이 많다보니 자기 일 하기도 버겁고 힘들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런데 최근에 아주 의미 있는 몇 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마을축제와 시민벼룩시장이 그것입니다.

마을축제는 일 년에 한 번씩 오월에 합니다. 대게 마을 축제라고 하면 관에서 돈을 내고 주관합니다. 관에서 주관하지 않더라도 돈이 나오는 곳은 관인 경우가 많죠. 그런데 은평구 마을축제는 관이 개입하지 않습니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돈을 내고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합니다. 여기에는 전부 세기도 힘든 지역단체들이 함께합니다. 큰 곳은 연신내문고나 불광문고처럼 큰 책방도 있지만 저 같은 작은 책방도 껴있고요, 여성의 전화, 병원노조, 비정규직센터 등도 함께 합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이 근처에 연습실을 갖고 있는 젊은 판소리꾼 모임인 ‘바닥소리’는 마을축제에서 멋지게 판소리를 한 자락 들려줍니다. 풍물패 ‘터울림’은 신명나는 풍물로 흥을 돋우고요, 아프리카 타악기를 연주하는 ‘두두리카’는 마을 사람들에게 아프리카 음악을 들려줍니다. 여기엔 태진아나 송대관, 장윤정 같은 가수가 나오지 않지만 직접 보면 그들보다 더 멋집니다. 게다가 다들 한동네 사람들이니까 또 얼마나 재미있나요?

벼룩시장도 같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매월 세 번째 토요일마다 응암역을 끼고 있는 작은 공원에서 하는데요, 이건 물건을 내다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장사가 아닙니다. 은평구 지역에 있는 여러 시민단체이 모여서 자기들 하는 일도 알리고 동네 사람들과 함께 노는 자립니다. 사람들이 고장 난 우산이나 자전거를 갖고 오면 고쳐줍니다. 무뎌진 칼을 갖고 나오면 칼을 갈아주기도 합니다. 병원 노조에서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혈압체크를 해주고 비정규센터에서 나온 분들은 자리를 펴고 앉아서 노동 상담을 해줍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필요한 게 뭘까요? 돈이나 명예, 권력인가요? 아닙니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사람입니다. 사람과 함께 하는 인간적인 어울림입니다. 책방은 바로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공간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이건 대형서점에서 할 수 없습니다. 대형서점 가면 그냥 책 사고 계산해갖고 나오면 그만입니다. 대형서점 주인장하고 내가 구입한 책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 나눠보신 분 있나요? 작은 서점에서는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책이라는 게 딱딱하고 재미없는 게 아니잖아요? 책 갖고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무궁무진한가요? 작은 책방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을 찾아서 하는 겁니다. 동네 사람들하고 독서토론하고, 청소년들하고 독서 퀴즈대회를 해 보는 겁니다. 책 하나를 사면 그것 가지고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고요, 그 손님을 기억하고 있다가 다음에 다시 오면 반갑게 인사하는 거죠. 그건 대형서점에서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바로 동네 서점에서 할 만한 일이에요. 그 대신 책 팔아서 돈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그런 생각 갖고 있으면 몇 달 못가서 문 닫습니다. 현실적으로 누가 요즘 동네 서점에서 책 삽니까? 참고서 같은 것 말고 말이죠. 책방에서 책만 팔면 그건 책을 파는 게 아니라 책처럼 생긴 물건을 파는 겁니다. 책방에서는 책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가치를 사람들과 함께 나눠야합니다.

얘기를 마무리하지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은 실상 책방에 관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책방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늘 하는 말이에요. 이건 어느 곳에나 다 포함시킬 수 있는 거죠. 당연히 그래야하고요. 저는 책방을 하고 있으니까 책방에서 책의 가치를 사람들과 함께 나눕니다. 자기가 옷가게를 하고 있으면 거기서 옷만 팔지 말고 옷을 중심으로 사람 마음을 나누는 겁니다. 다 괜찮아요. 떡볶이집을 하고 있으면 떡볶이를 팔면서, 중국집을 하고 있다면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면발처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치를 서로 나누자는 겁니다.

그렇게 하려면 중요한 게 있어요. 어려운 말일 수도 있는데 고유명사에 대한 집착과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크립키라는 미국 철학자가 있는데 그 사람이 쓴 책 가운데 <이름과 필연>이라는 게 있어요. 그거 아주 얇은 책이니까 못 보신 분은 나중에 한번 꼭 찾아서 읽어보세요. 비단 그 책에서만 그러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고유명사’ 혹은 ‘고정 지시어’에 너무 익숙해요. 어떤 이름이 있으면 딱 그거에만 집착하는 거죠.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을 떠올려보세요. 이건 고유명사입니다. 소크라테스라는 이름 들으면 뭐가 생각나세요? 아마도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유명한 철학자이고 독약을 받아먹고 죽은 사람이라는 게 머리에 그려질 겁니다. 하지만 철학은 전혀 모르고 축구에만 관심 있는 사람이 그 이름을 들으면 철학자 보다는 브라질 축구선수 소크라테스를 제일 처음 떠올릴 겁니다. 어때요? 그렇겠죠?

브라질 축구선수 소크라테스는 아버지가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존경해서 아들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는 철학보다 의학에 관심이 많아서 결국 의사가 됩니다. 빈약한 몸 때문에 건강을 위해 축구를 시작했는데 꽤 잘 했나 봐요. 브라질 프로축구팀에서 경기하면서 연봉을 12억이나 받았대요. 물론 의사 일도 계속 했지요. 연봉을 많이 받으니까 병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거의 무료로 진료를 해줬다는 거 에요. 비록 아버지 희망대로 소크라테스같은 철학자는 못됐지만 그보다 훨씬 멋진 사람 아닙니까?

분명히 이름이 같지만 이 사람이 철학자는 아니죠. 그럼 이 사람은 의사입니까, 축구 선수 입니까? ‘의사’와 ‘축구 선수’ 모두 직업을 나타내는 지시어입니다. 누구도 이 사람에게 “의사가 축구를 하니까 의사 자격이 없다.” 라든가 “축구 선수가 의사 일을 하니까 축구선수협회에서 제명해야 한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그런지 무리 짓기, 편 가르기가 심해요. 지역감정도 이런 것들 중 하나고요. 저는 책방이라는 이름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고 봐요. 책방은 책을 파는 곳이잖아요? 하지만 여기서 왜 꼭 책만 팔아야하냐고요. 책방에서 독서토론 하거나 청소년들하고 독서퀴즈대회 같은 걸 하면 책방 자격이 없나요? 그런 거 생각하지 말자는 겁니다.

제가 입고 있는 티셔츠를 보세요. 여기 왼쪽 가슴에 ‘Levi's’ 라는 글자 보이죠? 문제를 내겠습니다. 과연 이 옷이 진짜 리바이스 티셔츠일까요? 아니면 가짜일까요? 진짜라면 이 옷은 아주 비싸겠죠. 가짜라면? 제가 손재주가 좋은 겁니다. 남을 속일만큼 비슷하게 리바이스 티셔츠를 만든 거니까요. 진짜 리바이스라고 생각하는 분 손들어보세요. 네 고맙습니다. 몇 분 있군요. 이 옷은 진짜 리바이스가 아니라 가짭니다. 왠지 옷 리폼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는걸요? 이건 오년 전인가 벼룩시장에서 천원에 산 옷인데 제가 리바이스 티셔츠처럼 보이도록 만든 겁니다. 어때요? 이만하면 괜찮죠? ‘리바이스’라는 게 옷 만드는 회사 이름이란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 단어가 비싸고 괜찮은 옷이라는 배경지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전혀 다른 옷을 가져다가 다른 사람 눈을 속여도 이 옷은 똑같이 리바이스가 되기도 합니다. 참 우습죠? 옷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는데 이름 때문에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상품의 품질이 바뀝니다. 리바이스가 뭐든, 소크라테스가 뭐든, 책방이 뭐든 그 낱말에, 이름에 집착할 필요 없습니다. 크립키가 말한 것처럼 무언가에 붙어있는 이름은 필연적으로 그것을 지칭할 권력이 그 자체에 없기 때문입니다.

가끔 사람들이 물어봐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왜 이름을 헌책방이라고 지었느냐고요. 그럼 저는 말해요. 어렸을 때 루이스 캐롤이 지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재밌게 봤기 때문에 책방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저는 사실 ‘헌책’이란 말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물론 알다시피 우리 가게에서 중고 책을 팔고 있지만 그게 다 ‘헌’ 책은 아니거든요. 남이 보던 책이지만 헌 책이 아니에요. 그러면 사람들이 되 물어요. 헌책이라는 이름 좋아하지 않는데 왜 가게 이름을 헌책방이라고 했냐고. 다시 대답합니다. “아무 이유 없어요. 그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하고 음운이 맞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헌책방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써온 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 책방을 헌책방이라고 해도 저는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북까페라고 불러도 괜찮다고 보고요. 어떤 사람은 우리 책방에서 영화상영회를 할 때만 와요. 그 사람에게 우리 책방은 헌책방도 아니고 북까페도 아니죠. 동네 영화관입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우리 책방에 와서 소파에서 잠만 자다 가는 분도 있어요. 그분에게 우리 책방은 헌책방, 북까페, 영화관 그 무엇도 아니에요. 그냥 쉬었다 가는 곳이에요. 그 이상, 이하 아무것도 아니에요.

책방이기 때문에 꼭 정해진 무엇을 해야 한다, 혹은 내 이름이 걸린 것이기 때문에 뭘 멋있게 해야 한다 같은 생각이 다 편견이고 집착이에요. 책방이든 북까페든 그 이름을 결정하는 건 개인이 아니라 거기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걸 누구에게 강요하면 안돼요. 책방 일꾼이 사람들에게 강요해도 안 되고 사람들이 책방에게 강요해도 안 되겠지요. 제일 나쁜 건 사람이 사람에게 강요하는 거 에요. 나는 거기를 북까페로 알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에게도 북까페라고만 말하고 강요하는 거요. 다른 사람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혹은 다른 무엇이라도 - 자기가 아무리 잘나고 아는 게 많아도 알고 있는 걸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어요. 그건 지식으로부터 나오는 폭력이죠.

책방은 그걸 조심해야 해요. 책은 곧 지식이라는 등식. 그게 위험해요. 책방도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말고 사람들도 책방에게 강요하지 말아야죠. 책방에서 하는 일은 물건 팔아서 이익 남겨 자기 통장에 돈 쌓아두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과 함께 소중한 가치를 나누는 일이에요. 그러기 위해서 착한 사람들과 함께 연대해야 하고 고유명사에 대한 집착과 편견을 버려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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